프로젝트 실패 및 환불에 관한 보고

문림 프로젝트는 실패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결

안녕하세요. 엑스티입니다.

문림 프로젝트는 실패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결제하신 금액은 금주중으로 환불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문림 프로젝트는 왜 실패했나?

고려하지 못한 변수가 너무 많이 터졌습니다. 특히 1인 프로젝트인데 제가 암환자가 되고 건강이 망가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이후로는 멘탈이 하루하루 갈려나가서 닳아없어지는 것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유해요소에 대한 안전대책도 큰 스트레스 요소였는데, 환풍기 켜놓고 방독마스크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것들이 미세한 유해물질들을 완전히 배제해 준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광암의 원인이 되는 유해요소를 내가 또 들이마셔서 재발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려서 작업에 집중하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과는 다른 하드웨어 개발의 특성도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것은 어쨌든 개발자가 논리적으로 잘못되지 않은, 맞는 말을 하면 컴퓨터가 그것을 듣는 구조입니다. 하드웨어 개발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하드웨어로 엔지니어링에 입문했다면 이것이 별 문제가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어쨌든 소프트웨어 개발자 입장에서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도 일이 안 되고, 결과가 안 나오고, 실패하고, 실패의 원인조차 며칠 걸려 겨우 알 수 있거나, 심지어 영영 알 수 없는” 경험의 반복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고 멘탈을 갉아먹는 요인이었습니다. 물론 저 자신의 지식과 역량의 부족도 있었겠죠. 어쨌든 저에게 하드웨어 개발은 개발 그 자체가 즐거워서 개발에 심취해서 계속하게 되는, 이른바 플로(flow)에 빠질 수 있는 경험이 도저히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심지어 작업대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시간도 생겼는데, 뭘 할 때마다 여기가 잘못되고 저기가 잘못되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조건반사의 학습으로 두려움과 망설임이 생긴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때는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자잘한 부상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이것도 단순히 제 손재주가 부족한 탓이었겠습니다만. 3년 넘는 시간 동안 골방에 처박혀 사람도 거의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개발만 하는 상황도 정신적으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8월말까지 실물 공개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진행 상태를 봤을 때, 이런 작업 속도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입니다. 여기서 자존심을 버리고, 저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죄를 드려야 맞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가망이 없는가?

이 모든 것을 무릅쓰고 저는 조금 더,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 개발을 해 보고 싶습니다만 조건의 제약이 너무 심각합니다.

문림 프로젝트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2019년초입니다. 개발 착수는 2018년입니다. 실제 주문을 접수한 것은 작년 3월이 최초이며 지금까지 접수한 주문은 대략 200건 정도, 액수로 환산하면 약 4천만원입니다. 지금까지 개발에 소요된 기간과 각종 재료, 부품 구입에 소모된 비용을 고려했을 때 매우 부족합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개발을 계속하기 위해 저는 빚을 져 왔습니다. 여기서 최소 200대의 추가 주문을 받으면 금전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원래 계산했습니다만, 이것은 저 자신의 생계비에 대한 고려를 최소한으로 억제한 액수이고, 비현실적인 전망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수준의 생계비로 최근 몇 달 살아보니… 많이 불행하더군요. 게다가 올해 갑자기 암환자가 되었는데 앞으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지출 요인이 있을지 모르는 형편이기도 하고요. 이런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저도 이제 먹고 살아야 해서… 저에게 유예된 시간은 다 써버렸고, 지금쯤 더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더 이상 이 프로젝트에 시간과 노동을 투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주문 200건으로 완전히 새로운 키보드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켜 보겠다는 것 자체가 저의 과욕이었음을 겸허히 인정할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저 자신의 형편이 좀 나아지면 다시 해보겠습니다” 같은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암 선고를 받은 이후로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며칠 동안 저는 사람이 미래를 약속할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 개인의 앞가림조차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주제에 여러분께 근거 없는 희망과 기대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문림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실패했으며 회생할 가망은 전혀, 조금도 없는 것으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값을 더 비싸게 드릴 테니 단 1대만 만들어 주세요” 등의 요청도 전혀 응해 드릴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프로토타입이라도 팔아 주세요” 등의 요청도 역시 전혀 응해 드릴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문림의 모든 프로토타입은 개발 과정에서 개발을 위해 해체되었고, 현재 동작하는 문림은 전세계에 단 한 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문림을 쓰고 있지 못합니다.

키보드가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다른 제품을 구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문림의 설계사상을 높이 평가해 주시고, 혹은 문림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주시고, 그것도 아니면 단지 저라는 개발자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주셔서, 문림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돈을 결제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모든 분께 깊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꼭 혁신적인 입력장치로 여러분의 손을 모시고 싶었습니다만 저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여기서 무산을 맞게 되었습니다. 결제하신 액수는 돌려드리겠지만, 기다림에 보답해 드릴 수 없는 것은 참담하고 죄송한 심정입니다.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환불 관련

환불은 카드결제하신 내역의 결제취소를 통해 이뤄질 예정입니다. 금주중으로 결제대행사에 반환조치를 완료할 예정이며, 실제 반환은 카드사에 따라 3~5 영업일 소요될 수 있습니다.

환불과 관련하여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은 contact@moonrim.io 로 이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